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국내 대형 건설사들조차 정비사업 참여에 몸을 사리고 있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조합에서 3.3㎡당 단가를 자진해서 올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시공사를 선정해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공사비 분쟁은 이미 전국을 한번 시끄럽게 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필자는 공사비 증액과 관련해서 또 다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사업이고, 그중에서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청구하는 공사비 증액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와 같이 공사금액이 큰 계약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공사비 상세 내역서가 없다는 점은 잘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공사도급계약서에서 공사계약금액 조항을 규정하면서 “조합이 시공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공사계약금액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최종 인가한 건축시설의 건축 연면적에 3.3058㎡(평)당 금 ○○○원을 승한 금액으로 한다”고 하면서 상세 공사비 내역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공사가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공사의 특성상 조합의 요구사항을 포함해서 수차례의 설계변경이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사비 내역서가 없이 설계변경을 포함한 공사의 변경이 발생할 경우, 공사 진행 중에 공사비 내역서를 다시 만들어서 합의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설계변경뿐만 아니라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에도 동일하게 필요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공사도급계약서에서 실제 착공 이후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최근 레미콘 파업이나 코로나 전염병 발생과 같이 시공사에게 책임은 없는데 공사가 지연돼 물가상승의 영향을 받는 경우에도 계약서의 문구와 동일하게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경우에도 공사비 내역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공공공사의 경우, 소규모의 금액이 적은 공사도 공사도급내역서를 작성하는데,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까지 이르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공사도급계약에서 공사비 내역서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은 민간공사이므로 당사자 사이에서 정하는 방식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계약조항을 양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조합은 도면을 작성해서 시공사에게 제공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인허가나 공사 진행 중에도 도면이 변경되고 늦게 작성되다 보니 연면적과 3.3㎡(평)당 단가로만 공사계약금액을 정할 뿐 공사비 내역서를 상세하게 작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정비사업 공사비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공사비 내역서 작성이 관련 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 사업 규모에 따라 수조원에 이르는 공사의 상세한 내역서를 사업 초기에 작성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하고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반대로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사업과 증감비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준정립의 시작이다. 제대로 된 기준의 사전 합의 없이는 마지막까지 진흙탕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